말과 의미에 대한 깨달음과 함께 우리의 분별심이 우리의 세계를 창조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모든 말은 그저 파도처럼 지나가는 것일 뿐이며, 의미는 각자의 분별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우리가 말에 과도하게 집착하며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그저 말의 본질을 보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자기 분별심을 깨워 본마음에서 말을 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말투와 말씨는 불교 수행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불교의 핵심 가르침
반야심경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기본 교리가 모두 포함된 경전이다. 대승불교에서는 부처님의 본뜻을 드러내고 잘못 이해된 부분을 바로잡는 파사현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불교의 핵심 실천 가르침은 사성제와 팔정도로 구성된다.
팔정도는 중도를 구체화한 실천적 가르침으로, 정견과 정사를 포함한다. 사람들은 동일한 현상을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하므로, 괴로움의 원인은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바른 안목을 바탕으로 정사, 정어, 정업 세 가지를 실천해야 한다. 오늘은 '정어'에 대해 설명하며, 바르게 말해야 수행할 수 있다. 중도적인 마음가짐과 행동이 정신 수행의 근본이며, 불공 참석, 독경 재종 등의 방식도 포함된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가르친 바른 안목을 갖추어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말하고, 바르게 행동하는 것이 수행의 핵심이다. 극단적이지 않은 중도적인 무분별지에 입각한 바른말을 통해 수행할 수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분별심에는 중생심과 진여 심이 있으며,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세상을 창조한다. 중생심은 인연과 조건에 따라 생겨나고 사라지는 마음으로, 이를 기반으로 스트레스받는 포인트는 사람마다 다르다.
한편 진여심은 생각이 불생, 불멸하는 마음으로, 철저히 분별하는 마음인 분별심을 써서 세상을 창조한다. 불교에서는 이 분별심을 '심 마음 심자'로 표현하며, 모든 사람이 분별심을 가지고 자신의 세상을 창조할 수 있다.
그러나 분별심은 자기 해석에 따라 좋거나 나쁘게 해석될 수 있으며, 상황에 따라 가변적일 수 있다. 따라서 분별심은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지며, 중생심과 진여심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허상적인 분별심으로 창조되는 세계
인간은 자기 분별심을 가지고 허상적인 세계나 꿈의 세계를 창조한다. 하지만 이러한 분별심에 사로잡혀 실제 세계와는 다른 허망한 세계에 갇히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만법 유식의 세계는 허상의 세계일 뿐이며, 본질적인 마음에서 나오는 모든 분별이 있다.
일체유심조는 모든 분별과 신체, 정신의 모든 것이 마음에서 나오는 것을 의미한다.
말의 의미는 우리가 부여하는 것, 말에는 실체적인 것이 없다. 언어로 하는 말에도 생명이 담겨있다고 여기는 경우도 있지만, 본래 말에는 그런 실체적인 에너지가 없다.
불교에서도 언어의 한계와 허망함에 대해 이야기하며, 말을 부여한 의미에 대해 생각한다. 말의 의미는 각자의 해석과 생각에 따라 다르며, 특정한 말이 우리를 반응하게 하는 것은 자기의 인연과 분별에 따른 것이다.
말에는 많은 영향력이 있으며, 부부 사이에서 특히 조심해야 할 말들이 있다. 부부 사이에는 극단적으로 하면 안 되는 말들이 있으며, 표현하지 않아야 할 말을 하게 되면 큰 상처를 줄 수 있다.
말에는 힘이 없으며, 그래도 소리에 대한 개인의 반응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나쁜 영향을 주는 말을 전달하거나 받는 경우 정신적인 부담과 심리적인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말은 인연과 자신의 해석에 따라 뜻이 달라진다. 말은 그 자체로 소리 파장을 갖고 있지만, 인연과 경험에 따라 다르게 이해되고 해석될 수 있다.
과도한 의미 부여로 인해 말 한마디가 큰 상처가 될 수 있는데, 마음 공부를 통해 말의 본래 뜻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중생은 자기 분별에 휘둘리며 지옥과 극락을 창조하는 사람인데, 분별없이 순수하게 말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괴로움이 사라진다.
진실된 바른말이란?
진실된 바른말이란, 말에 속지 않고 하되함이 없는 것이ㅏㄷ. 그러기 위해서는 '이 첫 번째 자리에' 딱 중심을 잡고 있어야 한다.
이 첫 번째 자리에 머무르면서, 종소리 같은 말도 사람에 따라 분별이 다르듯이, 법도 사람에 따라 분별이 다르고, 각자 다른 생각과 판단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바른말'이란 절대적인 하나의 정의가 있는 게 아니며, 사람마다 '말의 뜻'이 다르기 때문에 거짓말 같은 바른말이란 것은 없다.
이러한 이유로 '법'도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절대성이 없다는 것이다.
말의 의미를 따라가지 말고 첫 번째 자리에서 마음과 목적을 가진 바른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않고, 판단과 분별없이 이전에 생긴 이 말들은 모두 같은 것으로 여겨진다.
말에 휘둘리지 않고, 첫 번째 자리에서 바른 말과 바른 마음을 가지고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말의 의미에서 양극단으로 치우치지 않고, 말의 내용에 크게 반응하지 않고 그저 이해하고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부처님은 법을 하실 때 말하지 않고 행동하여 건강한 말하기를 보여주셨다. 말하기를 통해 자취 없는 말이 되어야 하고, 평생을 법을 실천하며 건강한 말하기를 보여준 예라 할 수 있다.
불교에서는 사랑스러운 말을 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며, 이는 상대방의 말습관을 보는 것으로 그 사람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다. 오히려 가장 흉한 자신이 상대방에게 욕을 내뱉거나 나쁜 말을 한다면, 그게 나 자신에게 하는 말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이를 개선해야 한다.
불교는 이처럼 선한 말습관에서부터 시작해서, 나와 상대방, 모든 존재가 하나의 법과 마음을 공유한다는 사실까지 연결한다. 모든 것이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분별과 생각을 내려놓음으로써 진실과 경험을 만날 수 있다. 노력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며, 자신과 상대방, 더 나아가 모든 존재를 존중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도 불교에서 강조하는 바이다.
상대방에게 하는 말은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모든 말은 나 자신과의 관계이므로, 상대방에게 나쁜 말을 할 경우 나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다. 자기에게 욕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상대방에게 함으로써 우주로부터 무시당할 가능성이 생긴다.
말을 통해 상대방을 조정하고 욕하기 보다는 상대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말을 사용해야 한다. 바른말은 자비롭고 사랑에 가득 찬 말이며, 양극화된 말을 사용하게 되지 않게 된다. 세상은 자기 자신과의 관계이므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말을 사용해야 한다.
인연으로 삶과 세계 모두가 실체화되며, 최선을 다하면서도 과도한 집착은 다른 사람을 상대방을 해치는 말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존중하고 이해하면서 사랑과 존경의 말을 사용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펼쳐진 생각, 고정관념을 벗고, 호기심과 이해심으로 타인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절대적인 것은 없어, 상대적인 것이 모두다. 나아가 최선을 다하되 상대를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