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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말 사용의 중요성 2편

분별심을 가지고 꿈을 꾸고 자기의 꿈의 세계를 만들었단 말입니다. 그 꿈의 세계를 만든 게 만법 유식이, 그런데 그 드러난 모든 꿈의 세계 그 바탕에, 그 바탕에 있는 본마음,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는 마음. 그 마음을 심이라고 했단 말이죠. 마음 본래, 마음 본래면목, 주인공 불성 이렇게 표현을 했단 말이죠.

 

본질적인 마음이란?

이런 측면을 그래서 이 바탕에서 모든 분별이 나왔단 말이에요. 여러분 한 생각 일어나죠. 그 생각이 일어났다는 건, 그게 나온 자리가 있다는 얘기잖아요. 이미지가 이렇게 그려질 때, 그게 나온 자리가 있단 말이에요. 나온 마음이 없으면 그게 나올 수가 없단 말이죠. 그게 나온 그 자리, 그 첫 번째 자리, 첫 번째 마음, 그 마음을 심이라고 하고 삼남 한상 마음법, 모든 것은 전부 다이 마음 하나에서 나왔습니다.

 

이 마음을 그래서 삼계 심이라고 불러요. 삼계, 욕계, 새계, 무계, 온 우주 전체가 오로지 마음에서 나왔다는 소리예요. 그니까 만법 유할 때, 분별심이 만 다 하는 건 중심이 자기 분별의 세계를 만들었다 소리고, 삼계 유심이 소리는 이 부처님의 마음 본마음 진여심이라고 하는 이 본마음 하나가 모든 분별의 세계를 또 일체중생을 삼라만상, 정신적, 물질적인 모든 것이 전부 다이 마음 안에서 나왔다.

 

그래서 이것을 경에서는 일체유심조라고 불렀어요. 경에서 말하는 일체유심조를 가지고, 우리는 일체 유심조 못 들어봤어. 마음이 다 만드는 거야. 이렇게 우리는 해석을 하잖아요. 사실은 화엄경에 말하는 건 그 해석이 아니에요. 여기서 말하는 마음은 우리 분별심을 마음을 얘기하는 게 아닌 거죠.

 

즉, 우리가 이 이 두 가지를, 제가 얘기를 했는데요, 우리가 쓰는 언어, 말도 마찬가지예요. 말에 대해서도 어떤 생명을 써서 하는 말이 있어요. 그렇게 됐을 때 말한 모든 것들이 뭐랄까, 이 말은 인연 따라 생겨나고 사라지고 그뿐이에요. 거기 어떤 실체적인 어 어떤 에너지가 담겨 있지 않아요. 우리는 이런 걸 좋아하잖아요.

 

뭐 어떤 말에는 그거 자체에 엄청난 우주적 기운이 남겨 있다 물론 이제 그런 방편을 불교에서도 쓰기는 해요. 어뭐 진언이라 뭐 다라니 같은 그런 방편을 쓰기도 하는데 분명히 그것은 방편입니다. 초기 경전에서 12 연기에서도 명과 색을 버리라고 하고, 언어 것에 대한 허망함을 이렇게 끊임없이 불교에서는 설하고 있거든요.

 

즉, 우리가 쓰는 이 말이라는 건 본래 실체적인 것이 아니에요. 어떤 말도 그런데, 그 말을 우리가 쓰면서 그 말의 의미를 부여하고, 특정한 말에다가 특정한 자기만의 의미를 부여한다 말이에요. 제가 이런 비유를 많이 듣는데, 어떤 이제 보살님들은 그런 분들 계시겠죠?

 

와 건강해 보인다 해도 뚱뚱하다 소린가. 이 좀 이러거나 아니면 요즘에 좀 살이 붙은 거 같아라는 소리를 막 죽기보다 듣기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죠. 내가 살진 거에 대한 스트레스가 큰 사람은 그러겠죠. 그죠. 그런데 전혀 살진 거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는 사람은 살이 좀 붙은 거 같다 이러면 기분 좋아하겠죠. 근데 그 말에는 특정한 좋거나 나쁠, 아무것도 없는 거죠. 사실은 근데, 자기의 인연 따라 자기의 분별, 해석, 생각 따라서 특정한 말이 나를 반응하게 만드는 말들이 저마다 가지고 있잖아요.

 

나는 딴 말은 들어도 괜찮은데, 그 말은 나한테 하지 마라. 부부간에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말들이 있잖아요. 끝끝내 이만큼 있어도 이것까지 내뱉어서는 안 되는 그런 어떤 법칙과 같은 말이 있는데. 너무 화딱지가 나서 부부싸움 하다가 막 막 끝장까지 가게 되면 해선 안 된 말을 해버리고, 또 어떤 사람은 이 말을 일부로 해서 저 사람 가슴을 어르고 싶은 마음으로 하는 사람도 있단 말이죠.

 

그 됐을 때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아요. 그러면 그 말 한마디가 있잖아요. 그 부부 간에서 남편이나 아내가 상대에게 그 최악에 하지 말았어야 될 그 말을 한마디 한 것 때문에 어떤 일이 벌어지면 평생 마음이 닦 버려요. 상대방에게 평생 마음이 닦아서 벽을 치게 됩니다 이 네가 어떤 말을 해도 믿지 못한다. 너 마음이 그랬구나, 완전히 마음이 확 닦여 버리는 경우가 있잖아요. 살다 보면 그죠.

 

그런데 그 마음 닦긴 것이 30년 40년 50년이 풀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평생토록 그 마을의 상처로 평생 죽고 싶은 마음을 가질 수도 있어요. 이처럼 말이라는 것은 사실은 이 법의 자리에서 봤을 때는 이 삼계 심이라고 하는 본래 마음에서 봤을 때는 본래 마음을 쓰는 측면에서 봤을 때는 마치 뭐와 같으냐, 바다 위에 파도와 같아서, 바다를 우리 본래 마음이라고 하면 바다 위에 드러난 파도는 분별심이 식이에요.

 

인연과 자신의 핵석

분별심을 써서 하는 모든 말들은 파도와 같아요. 그 인연 따라 생겨났다 사라지고 그뿐이에요. 힘이 없습니다. 이게 이 소리는 그냥 소리일 뿐이죠. 그죠, 소리 파일 뿐이에요. 이게 무슨 힘이 있겠어요? 이건 좋은 것도 이고 나쁜 것도 아니죠. 정해서 보면 그대로 있는 그대로 들으면 이거예요. 그냥 이게 진실이죠.

 

그죠. 여기에 해석을 붙이지 않고 분별하지 않고 분별심을 쓰지 않고 그냥 들으면 지금이 뿐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이 소리가 누군가에게는 괴로움이 될 수도 있죠. 이렇게 두드리는 소리가 그냥 이게 다란 말이죠.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란 말이죠. 근데 누군가는 층간 소음 때문에 스트레스받는데, 누군가는 이 소리가 정신병을 가져온대요.

 

층간소음으로 한 5년 10년 이게 쌓이면 정신병이 올 정도가 된대요. 그럼 보세요. 이 소리가 이게 뭔 힘이 있다고 해서, 이게 나를 정신병을 가져올까요? 그니까, 남편하고, 아들 딸들은 전혀 간 반응하지 않는데요. 엄마 이상해. 엄마 왜 이렇게 예민해? 근데 엄마는 미쳐 버리겠는가? 나는 죽을 것 같은데. 쟤네들이 나 보고 이상하다고 하니까, 그니까, 이게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문제라면 그건 그 자체의 어떤 문제라는 실질적인 어떤 실체가 있겠죠?

 

근데, 나만 그 층간 섬에 분노한다면, 그는 그 층간 소음 자체는 그냥 있는 그대로거나 것도 아닌 거거든요. 근데, 그 말에 우리는 휘둘리지 자기 분별 때문에 자기가 거기 힘을 실어줘서 거기에 막 신경 쓰기 시작하면 그래요. 저희 바로 옆에 기찻길이 있었습니다. 그 저는 소리에는 전혀 반응을 안 해요. 기차가 아무리 와도 막 그냥 편이 거죠. 우리 집안 모든 사람은 기찻길이 옆에 있다는 것도 인식을 못 하고 살았어요. 친척이 놀러 왔는데, 친척이 제방에서 한번 자고 나더니 죽으려고 하면서 어떻게 이런 지옥 같은 곳에서 살 수가 있냐고 그 얘기를 하는데, 우리가 전부 다 깜짝 놀랐어요.

 

여기 기차소리가 나. 그래서 기차가 얼마만에 한 번씩 오는지 아냐 이러길래 한두 시간에 하나 오나이 이랬던 기억이 나요. 그래서 그 친구가 무슨 소리 하냐고 10분 15분에게 오는 거 같다고 그 그깐 그 친구 이제 떠나가고 나서 가만히 보니까, 이제 그때부터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럼 그 소리가 그 소리 파장 자체는 그냥 있는 그대로라 말이죠, 있는 그대로예요.

 

의미가 부여가 되면 다를 것 같지만 똑같죠. 야 하는 소리가 야하는 소리는 그냥 야해요. 판단 분별하지 않으면 근데, 나이 드신 분이 젊은 사람이 만약에 야, 이런 소리를 들었다 이러면 엄청 화가 나겠죠.

 

그 단순한 말, 말 하나가 화를 불러 일으키겠습니다. 그니까, 즉 우리가 이 근원의 자리에서 보면, 본질적인 근원의 자리에서 보면 이 본마음의 자리에서 보면 어떤 말도 전부 다 인연 따라 그 말의 소리 파장이 생겨나고 사라질 뿐이고 그 동일한 소리 하나의 말 하나하나에 사람이 자기의 살아온 삶의 업에 따라서 자신이 살면서 익혀왔던 업과 인연에 따라서 자기 법식에 따라서 그 말을 다르게 해석하지 그러니까, 똑같은 말이 어떤 사람에겐 지옥이 되고 어떤 사람은 듣기 좋은 말이 되는 것처럼. 그러니까 진실은 뭐예요, 말에는 뜻이 없어요.

 

말은 그냥 인연 따라 생기고 사라지고 그뿐이에요. 연생, 연면 끝, 아무 뜻이 없단 말이에요. 근데 거기에 우리가 과도하게 집착하게 되면 말의 의미에 과도하게 집착하고 의미를 과도하게 쫓아가게 되면 그 말 한마디가 엄청나게 큰 상처가 되기도 한단 말이죠. 한마디 말 듣고는 오늘 하루 종일 기분이 나쁘기도 하, 한단 말이죠.

 

말의 의미

그래서 우리가 마음 공부를 해서 깨닫는다는 것은 뭐냐면 모든 것들은 이렇게, 말이라는 것도 그렇고, 행동이라는 것도 그렇고 다 마찬가지죠. 모든 것들은 이와 같이 본래의 뜻이 있는데, 다만 인연 따라 내 안에서 생겨나고 사라질 뿐이거든요.

 

우리 중생은 뭐가 중생이. 평생을 자기 분별에 휘둘리면서 지옥과 극락을 자기 마음에서 창조하면서 사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이 첫 번째 자리를 깨닫는다 하는 것은 뭐냐면, 말이 나오기, 말이 의미를 따라가기 이전, 의미를 따라가기 이전에는 분별이 없었단 말이에요. 갓난 내기가 갓난 내기는 말을, 말의 뜻을 모르겠죠. 갓난 내기는 그 아이한테 나쁜 놈 하든, 착한 아게 하든 그냥 쌩글쌩글 웃고 말 거예요. 분별을 따라가지 않으니까. 그리고 또 분별을 쓰긴 쓰더라도 분별을 쓰긴 쓰더라도 거기에 내가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예를 들어, 우리가 누가 약간 좀 정신나간 사람이 아무나 보고 욕을 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이 나한테 욕을 했다고 해서 괴롭지 않잖아요. 그 내가 아, 저 사람은 원래 저렇구나 하고 내 마음에서 저 사람에 대한 의미를 탁 떨어뜨리니 그 사람이 욕하는 건 괴롭지 않아요. 근데 내가 마음에서 의미 부여한 어떤 사람이 나한테 욕을 하면, 과도하게 괴롭, 괴롭겠지만 자체가 나를 괴롭히는 게 아니에요. 말에 대한 나의 생각과 해석과 판단이 나를 괴롭히는 거 있죠.

 

그래서 이 바른 말이라는 것은 뭐를 바른말이라고 하느냐. 말을 하지만 말에 속지 않는 거예요. 하되 함이 없이 하는 겁니다. 말을 다 하고 말을 다 듣는데 거기에 속지 않는 거예요. 이것이 인연 따라 생겨나고 인연 따라 사라질. 이 첫 번째 자리에 딱 중심 잡고서 있는 것이죠.